익발(11-9-1877~4-21-1938)
그는 코란 제 4장 '하느님의 종교를 위해 싸워야 한다'를 믿습니다.인디아 내셔날라즘에 확고히 동조하며 '새로운 제단 Naya shawala'이란 시를 발표,
인디아를 밀어준 후 자신과 사물을 옳게보는 소망으로 범(凡)이슬람의 단결을 호소하고 퇴폐주의로 흐르는 현 상태를 한탄하며 악명 높은 '자신의 비밀 Asar-e khudi(1915)'을 페르시아어로 전 무슬림교인에게 시를 올립니다.
무슬림을 재건하는 방향제시로 현존하는 무슬림 조직신학에 정반대의 댓글로 자신의 이론을 부각시키며 자기를 부정하는 무저항이라야 한다고 주장하며 정적(靜寂)으로 신비주의 종교운동을 펼치기 시작.
이를 보강부연하기 위하여 페르시아어로 이슬람의 숨은 잠재력 '무욕의 헌신의 신비 Rumuz-e bikhudt(1918)'를 발표합니다.
무슬림들은 구약성경과 코란을 잘 압니다.
거의가 기도, 금식 계율을 철저히 지키는 편입니다.
그는 이어서 페르시아어로 3부작 '동방의 메시지 Payam-e Mashriq(1923)', '페르시아 시편 Zabr-e Ajam(1927)', 지나간 13세기에 활약했던 신비주의 Jalal ad-Din ar-Rumi의 왕국을 생각하며 그들 조상들이 경험한 흔적(archeㆍtype)을 회상하는 '영원의 노래 Zavid-nameh(1932)'.
1928-1929년간에 행한 6회분량의 강의집이었던 '이슬람의 부흥에 관한 신앙적 간증 The Reconstruction of Religious in Islam(1934)'.
이 때에 무슬림 연맹에 동조, 동반사역합니다.
울두(Urdu)어와 페르시아어로
'가브리엘 천사의 날개 Bal-e Jibril(1935)', '모세의 일진광풍 Zarb-e kalim(1937)', 사후출판된 '집단적 이주(移住)의 선물 Armaghan-e Hijaz(1938)'.
1930년에 그는 인디아 북서부(西파키스탄, 현 파키스탄)에서 무슬림교인을 성공리에 소집한 후 무슬림교인들이 인디아로부터 분할해나갈 것을 인디아 정부에게 통보 및 요구하는 독립선언 명연설을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