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아노 과부가 어느날 다락방을 정리하다가 우연히 옛날에 자기를 좋아했던 남자의 일기장을 발견하게 되었다. 하던 일을 멈추고 한장 한장 넘겨가다가 보니 너무나 애절하게 자기를 사랑하며 그리워 한다는 얘기가 거기 쓰여있었다고 했다. 아니! 이처럼 자기를 사모하던 남자를 자기가 전혀 따듯하게, 아니 그처럼 모르는 척을 할 수가 있었다는 말이냐... 도저히 자기가 자기를 이해할 수가 없었다. 아~ 나는 어찌도 이리 무정할 수가 있다는 말이냐? 가슴이 찢어질듯 아파오는 순간을 못 이겨서 거기를 부랴부랴 도망쳐 나왔다누먼...
이야기는 '커네티컽'의 어느 대학을 다닐 때로 거슬러 올라간다. MIT에서 공부하던 오빠의 친구 한 명이 자기 집에 놀라온 적이 있었다. 무슨 '엔지니어링'을 전공한다는 젊은이었는데, 그 날 이후로 부터 기회가 있는 대로 오빠를 따라 와서 자기 앞에서 얼씬거리다 못해, 편지... 말하자면 연애편지 같은 것이 날아들었단다. 한 말로 말해 자기에게 반했다는 건데, 자기로서는 이 남자가 왜 그러는 건지 도무지 이해가 않갔다는 거다.
심지어 자기네 대학까지 방문해서 자기가 피아노 연습하는 것도 청문하면서 칭찬도 하고 차도 나누자고 하면서 쫒아다녔다고... 열번 찍어서 넘어가지 않는 나무가 없다는 격언이 연애하는 남자들에게 요긴하게 쓰인다. 그가 그런 정성을 다 했는데도 자기로서는 전혀 어떤 애틋하다고 할까, 아니면 한 異性(이성)으로서의 어떤 연애감정이 일지를 않더라는 거였다.
제물에 꼭지가 떨어져 나갔다고나 할까..., 그 젊은이가 더 이상 자기를 찾지를 않던 어느날에 두툼한 소포가 하나 날아 들었었다. 10 여년이 지난 이날에 그 소포를 처음 뜯어보게 되었다. 사랑한다는... 그러나 결국 이루지 못한 고백이 거기에 줄줄이 써 있더라는 것이다. 정신을 가다듬고 이런 생각을 했단다. 그 남자는 그런 감정에 휘말릴 나이였지만, 자기는 그럴 정신적 연령에 미쳐 도달하지 않았던 것일 것이다. 그게 어찌 내 잘못이라고 나를 나무랠 수가 있을쏘냐?
이 여자에게도 남들 같이 한 남자와 가정을 이루어야 하겠다는 때가 정작 오고 말았다. 눈을 싰고 어떤 젊은이가 세상에 있는가를 살필 적에 누가 자기에게 괜찮아 보이는 한 총각을 소개해 주었다. 그에게 첫눈에 반했다기 보다는 남편으로서 조건이 잘 가추어져 보이는 그런 남자로 판단되었단다. 그래서 그 사람과 화촉을 밝히기에 이르렀다. 서울대학교에서 단과대학들의 전체 우등생으로 상장을 받았었고, 미국으로 유학와서 MIT를 '엔진니어'로 졸업한 대단한 머리의 수재였다는 말을 들었다. 이 사람이 졸업하던 해가 공과대학의 차례에서 대통령이 졸업식장에서 그런 영예의 상장를 직접 이 사람에게 안겨 주었다고...
이 동네에서 좋은 집에 보금자리를 꾸며 살아오기 10 여년에 아들 둘을 낳았고, 착실한 가정주부로서 자기가 할수 있는 최대한의 봉사를 밤과 낮으로 다 했다고 한다. 이 '피아노 과부' 자신이 역시 수재의 소질을 가진 여자로서 이민오기 전에 경기여중을 1등으로 입학했던 과거를 가지고 있는 분이다. 성질 마저 차분하고 나긋나긋하게 말하는 그 성품으로 많은 사람들에게 좋은 인상을 남겨준다. 남의 흉이나 까십은 절대 입에 담는 법이 없고, 예절 바르게 조용조용 자기 할 일만 충실하게 하는 품격있는 인상을 풍긴다.
언젠가 이곳 한국출신의 "과학자와 엔지니어 협회"의 모임에 남편을 따라 그 파티에 참가한 적이 있었다. 그 자리에서 너무나 놀랍게도 자기를 사모하던 옛날의 그 남자와 마주치게 되었다. 오래된 일이었지만, 그래도 자기를 그처럼 좋아한 남자이다가 보니 웃음으로 대하면서 안부를 묻는 인사를 하지 않을 수가 없었단다. 들리는 말로는 인터넽 시대의 선구자 중에 한 사람으로 그 방면에서 꽤 성공하고 있더라고. 그 남자가 은근히 웃으면서 하는 말이, I hope you really have a happy marriage life. (당신이 행복한 결혼생활을 하시기를 진정 바랍니다.)
이런 말을 듣는 순간 확끈해서 못 들은척 했지만 너무나 가슴을 에어오는 절박한 인사였다고... 왜냐 하면, 자신은 결코 행복하다고 생각지 않았던 차였기 때문이었다. 남편은 경제적으로 흠잡을 데가 없는 사람이었다. 단지 얼음과 같이 찬 사람이라는 것 밖에는... 한 지붕 아래에서 자기는 밤과 낮으로 남편과 집안의 뒷바라지로, 또 자식 하나를 세계 랭킹의 테니스 선수로 만드는 온갓 일로 어머니의 역활을 다 했을 뿐이었다. 그러나 부부 간에 정작 어떤 애정어린 대화라는 것이 오고 간 적이 별로 없었다. 담담히 18년을 살아 가면서 한번도 싸운 적이 없었을 정도였다.
이들이 이혼하는 전후에서 이 사람이 우리 교회를 잠간 나온 적이 있었는데, 그처럼 거만하고 자기만 아는 친구를 내가 본 적이 없었다. 남을 보고 인사를 한다든가 사람들과 어울리지를 않으려 했다. 나에게 까지 이유없이 악감정을 불러 일어키는 그런 인물이였다. 이 친구가 한국에서 어떤 곱상한 여자와 곧 재혼하고는 '피아노 과부'가 예배반주 하는 교회에 그 새 부인을 대동하고 매주 출근하던 사람이었다. 우리의 주인공을 혼자서 몰래 울리면서 말이다.
이 사람이 왜 이런 사람이 됐는가? 내가 궁금해 할 수 밖에... 알고보니 한국의 어느 유명 대학교 병원에 잘 알려진 의학교수가 이 사람의 아버지였다. 喪妻(상처)를 해서 새 어머니가 이 사람 어릴 때에 들어왔다고. 자기 자식들이 많아지자 이 사람이 계모의 눈에 나기 시작했던 모양이었다. 이 상황에서 실아남는 유일한 길은 오직 입을 막고 공부만을 해야 했었겠지... 그 와중에서 또하나의 불행한 사람이 태어나고 말았다.
정상적인 가정에서도 할 말을 않하는 한국의 전통에서 이 사람이 그 방면의 우등생으로 자기의 가정을 꾸미다가 보니, 그 부인된 여자가 환장을 하게 됐다는 것은 상상을 하고도 남는다. 드디어 '피아노 선생'이 "이혼할 것을 선언"하기에 이르렀다. 이 사람이 어찌나 놀래던지 자기 부인이 갑자기 왜 그러는 가를 이해하지를 못했다더군. 그러나 이 여자는 법정에서 까지애걸복걸하는 남편을 서명시키기는 데에 성공하고 말았다고. 겉보기에 얌전한 여자의 마음 속에서 강심장이 펄쩍거리고 있다는 사실을 당신네..., 벙어리들이 아시는가?
禪涅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