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목에 꽃을 피우기 어렵습니다.
58세의 과부 링이빌(Ligniville) 앤-캐서린 엘베티우스 여사.
순박한 농민의 딸.- Helvetius, Anne-Catherine de Ligniville (1719-1794)
그러나 부자 망부가 남긴 재산으로 귀부녀 복식을 하고 강건하여 힘이 넘치고 그녀의 재치는 빈틈 없섰다고 합니다.
오토에일(Auteuil)에 소재한 그녀의 집에 많은 식객(食客)이 모여드는데 그 중에는 철학자, 가톨릭 수사, 그리고 벤자민 프랭클린(1706-1790).
프랭클린이 71세에 58세된 과부 엘베티우스 여사를 처음 만나고 3년 후에 청혼했으나 그녀가 벽난로 앞에 털석 주저 앉아 일주일 생각해 보더니 거절.,
그녀는 전에 그녀에게 청혼했다 거절당한 남자에게 의견을 물었더니 만약에 프랭클린과 결혼하면 그녀가 운영하는 싸롱을 계속할 수 없을 것이라고 답을 주자 그 이후로 프랭클린과 연락을 끊었음.
그녀는 프랭클린을 존경하지만 만약에 그와 결혼한다면 다 버리고 오라고 하지만 싸롱을 그만 두는 것은 물론 열 여덟마리 고양이, 열 마리의 개 그리고 많은 새들을 미국으로 가져올 수 없기 때문.
그 중에 푸푸(Poupou. 이蝨란 뜻) 강아지는 그녀에게 뛰어 올라 입을 맞추었고, 마루를 더럽히면 그녀는 그 비싼 스커트 옷섭으로 그 얼룩을 닦아내곤 하던 개였다.
프랭클린이 필라델피아로 돌아와서도 그의 여생 6년간 그녀를 잊지 못했지만 그녀에게 연락이 닿지 않았다고 합니다.
그녀의 골격은 확연히 왕비 귀태나고 얼굴에는 노반(老斑. 검은 점)과 주름살.
순박한 만큼 '그녀의 버릇은 꾀죄죄(Her habits were slovenly)'.
그가 직무상 프랑스 정부요인을 만나고 나면 즉시 그녀의 집으로 달려갔다고 합니다.
정치면에서 그는 특별한 직위에 오르지 않았지만 미국의 건국의 아버지의 한 사람으로서, 독립선언서 기초위원이었고 프랑스에 가서 미국과 동맹을 체결하는 데 일조하였고, 프랑스 정부로부터 재정지원을 받아냈고 파리조약에 미국대표의 일원으로 참석했다고 합니다.
그가 프랑스 고관들 앞에서 쌍과부 나오미-룻 이야기를 하면서 그리스도교를 잊혀가고 있는 그들에게 복음을 전파하자 '그 이야기가 어디 써 있습니까'라는 질문을 받고 구약성서에 기록되어 있다고 답변했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