옳을 의(義), 착할 선(善), 바를 정(正), 올바름(正義:옳고 바름)이라 한다면 혹시:
전에 김재규가 독재, 아집의 박통을 시해했다면 의(義), 그러고도 살려고 했다면 착하지 않은 겁니다~~라고 생각할 수도.
그 전에 박정희소장이 혁명공약으로 내세운 중에 '기아선상으로 허덕이는 국민을 위해 혁명을 완수한 후에 국민정부에 권력을 이양하고 물러나겠다'는 공약을 실천하지 않은 이유는 착하지 않아서입니다~~라고 생각할 수도.
전에 장인환을 위한 법정에서의 통역부탁을 거절한 이승만은 착하지 않았던 겁니다. 그 장인환은 [샌프란시스코 오클랜드 페리역에서] 그 동안 일본 편에서 조선왕조 병탐을 도와주었고, 미국에 일본의 한국병탐의 정당성을 전달하던 일본 외무성고문 미국인 스티븐스를 피스톨로 명중시킨 독립투사. 이승만이 변호를 거절한 이유는 자기는 감리교신자로서 살인자 통역은 안하겠다는 겁니다.
전에 이또 히로부미가 한국합방 조선총독에서 더 좋은 일을 맡기 위해 현직해임당하고 만주병탐야욕을 가지고 하얼빈에 도착했을 때에 안중근이가 저격사시킵니다. 의인(義人)이지요. 그러나 일본에서 볼 때에는 의인이 아닙니다. 그러나 그는 이또를 죽이고도 오래 살려고 여하한 노력을 하지 않았기에 그는 착한 사람.
다시 말하여 의로움(義)은 충효에서 쓰일 그 사회적인 뜻이지 국제간에 통용될 수 있는 정치용어는 아닐 겁니다.
시조 "이화 월백하고 은한이 삼경인제~♬"를 읊은 이조년(李兆年)이 두 개의 금덩이를 주어 형과 나누어 가진 후에 만약에 형이 없었더라면 이 금덩어리를 혼자 가질 수 있는데라고 문득 생각나자 아이구 이 금덩어리때문에 형과 의(宜. 마땅함)가 상할까 보아 강물에 던진 사건이 있었답니다.
그 때 금덩어리는 진정금(眞正金)이요 얻고자 하는 지혜라고 비유되며, 아우의 마음이 착(善)하기에 형과 나눈 것이고, 버린 것은 불노소득으로 왈가왈부하는 것이 옳(義)지 않다고 여겼기에 버렸을 것이라 가정할 수 있다면~~
그 금덩이를 남을 줄 수도 있고, 습득물 신고를 할 수도 있는 선텍의 여지가 있었다 하겠읍니다.
그러므로 옳음(義)보다 착하기 어렵고 착함(善)보다 바르기(正)가 어렵다 하겠읍니다. 만약에 누가 있서, 충신으로써 망하는 고려왕조에 집착한 최 영, 정몽주를 의롭다고만 할 수 있겠으며, 권도로써 세조에게 옮겨붙은 정인지, 신숙주를 불의하다고만 할 수 있겠읍니까?
속어에 형제들이 싸우다가 밖에서 모욕을 당하면 둘이서 그 모욕을 준 사람에게 시비곡절을 떠나 달겨든다면 이는 형제의(宜)로써 의(義)로운 것이지 착한 행실은 아닐 겁니다.
사실적으로 이승만이 소식 적에 고종황제가 받는 돈이 많다며 하야하기를 권하자 미움을 사 체포령이 내렸을 적에 아펜셀러 집에 숨을 수 있었읍니다. 이 때에 아펜셀러가 의로워서가 아니라 착해서일겁니다.
그 한고조에게 천하에 둘도 없는 대장군 한 신이란 개국공신이 '토사구팽당한다'란 말을 읊조리며 잡혀간 사건이 있었죠. 그가 잡혀간 이유는 나라를 세울 때에 항명한 친구가 도망다니기에 집에 데리고 있었던 죄였읍니다만 한고조가 착하지 않아서 잡혀간 격이 아닐까요.
충의(忠義)를 생각하면 친구를 포박하여 송치해야 하지만 나라가 세워진 마당에 구면을 살려주려했던 소박한 마음이었지만 한고조가 더 이상 쓸모가 없다고 여겼기 때문에 왕의 마음씨가 곱지 않다는 겁니다.
그 백두산 호랑이가 말보로 답배꽁초 물고 다니던 전국시대 진(晉)나라에 예양(豫讓)이란 사람이 모시던 주군(主君) 지백(智伯)이 조양자(趙襄子)에게 죽자 이 원수를 갚기 위해 온 몸에 옻칠로 두두레기 진물을 흘리고 문신(紋身. tatoo)하여 변장한 후에 조양자를 죽이려 했으나 실패하고 그만 목이 잘렸답니다. 이 사람이 과연 옳(義)은가요? 충성으로 옳지만 살인한 자를 살인해야만 착한 행위가 아니라면 예양은 착한 일을 하려다 죽임을 당한 게 아닐 겁니다.
미국이 한반도를 위도 38선으로 두 동강내고 안정할 때까지 남한정부에 신탁통치겸 삼으려 했기에 북한괴뢰정부가 남침했을 때에 유엔군을 상륙시켜 민족상잔의 전투에서 5만명 군인이 죽었다면 이 것은 국제간의 미국이 통일한국이 될 때까지의 의(義). 그러나 살상을 하고, 상살당하는 전쟁 자체는 정당화할 수는 없겠읍니다만, 두 토막으로 나뉘길 원하지 않던 이승만 정부와 우리 국민에 대하여 올바르게 대해주지 않은 인과응보랄 수도 있겠읍니다.
의(義)는 이 나라 저 나라에 공번(공평 equity, justice)하지 않겠읍니다.
의인 이순신장군이 병사들과 국민을 선조대왕 정부보다 더 사랑한 것은 착해서일 겁니다. 이 장군의 전술과 여민동락 큰 사랑의 덕에 대해서 '러시아 로제스트 벤스키 해군제독 함대를 격파하여 노일전쟁발발을 승리로 이끈' 일본제독 토고 헤이하찌로(1848-1934)가 실토했읍니다.
바름(正)은 수학, 과학용어에 나오는 지혜일 겁니다.
사물의 조직을 생각으로만 뽑아낸 지혜를 성현의 것이라 하고, 사물의 존재와 상호관계를 최대한 육하(六何)원칙을 찾아 그 기전(機轉 mechanism. 격물치지)을 수리적(數理的)으로 표현한 것이 괴학적인 바름이겠기에 박사를 '지혜를 사랑하는 자'라고 한다면, 정치ㅡ사회용어인 의롭다함을 바르다고 말 할 수 없겠다 싶습니다.
만약에 과녁이 있다면 제일 가운데가 바름(正), 이 면적을 싸고 있는 조금 큰 동그라미가 착함(善), 역시 이 착함마저 싸고 있는 큰 동그라미가 의로운 것(義)이라고 여긴다면 참으로 바름은 선하고 의롭다하겠읍니다.
^-^dkp Apr 6, 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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