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이 바뀌면서 휘몰아치는 장대비를 피하려면 우비를 들쳐 입거나 우산을 씁니다. 그야 물론 폭주하는 비에 우산 써봐야 구멍난 우산이나 진배없지만 그래도 없는 것 보다 낫고 귀와 눈에 빗물이 덜 떨어집니다.
요즈음에 그 시시콜콜한 것까지 우리의 귀와 눈에 띠는 뉴스는 골 때립니다. 이 걸 막으려면 우산 비슷한 것을 쓰고 아예 폭주하는 기사를 차라리 안 보는 게 낫다고 말하는 사람도 있기는 합니다만.
일찌기 소동파가 말하기로 '식자우환'이니 '글자를 모르는 게 약이라고',
일전에 Park Kwang Ok 선생이 '가장 행복하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마이크로네시아 사람'들이라는 글을 올렸읍니다. 까닭은 그들이 세상 돌아가는 뉴스를 머리 아프게 알 필요 없이 살고 있기 때문이겠지요. 알려고도 하지 않고, 알아야 된다는 의지도 부족한지 알 필요가 없다는 건지 유유자적. ㅋ
Fiji, Solomon-Marshall 군도, 이름도 생소한 Tuvalu-Kilivati, .. 거의 시골쥐 로빈손 크루소 생활.
이 사람들은 서울쥐 바바리 코트가 뭔지 구찌가방이 패션인지 알 필요를 느끼지 않고 Barnes & Noble 'the Simple Touch Reader'가 고물된지도 필요없고 알려고도 하지 않겠지요.
그 소비를 조장하는 신형, 패션에 민감하다보면 아이돌라트리 극장에 들어가 대중과 함께 질서정연하게 나란히 앉는 격.
그냥 자신의 스타일로 살면서 장화신는 패션이 장대비처럼 내릴 때는 할 수 없이 그 장화를 한 켤레 사야겠지만서도 그 많은 각설과 보이는 구경거리와 이에 덩달아 따라가는 낭비는 세상의 평안을 위해서도 결코 미덕이 아닐 겁니다.
머리를 들어 자연을 보고, 머리를 숙여 세상의 요지경을 본다.
선경 속에서 속된 세상을 잊고 초연하게 살던 이 백이 부럽다. 모든 사람을 속인으로 볼 수밖에 없는 그의 시 한 구절로 이 글을 맺는 것이 좋겠다 싶네요.
나보고 묻되 무슨 일로 푸른 산에 사느냐고 묻는다면 피식이 웃고 대답은 아니하지만 내 마음은 스스로 한가하니라.ㅡ문여하사(問余何事)로 서벽산(棲碧山)고 소이부답심자한(笑而不答心自閑)이라.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