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양사람을 배척하는 척양(斥洋)정신. 캐캐묵은 사고방식!
그 깨끗한 피 아무도 없다. 이승만 선조도 몽고에 협조했음.
이승만박사는 오스트리아 독립운동가의 딸 프란체스카 여사와 결혼했다.
결혼 후 한 번도 양장을 한 적 없고, 우리 말, 우리문화, 여필종부 예의범절을 따랐다.
그, 우리 이박사의 계보:
전주(완산)이씨, 신라시대 이 한(李翰), 제 6대에 이르러 고려의 녹(祿)을 먹다가, 제 16대 이안사(李安社-穆祖) 때 전주에 살다 함경남도 선주지사.
제 19대 이행리(李行里-翼祖), 제 20대 이 춘(李春-廣祖), 제 21대 이자춘(李子春-杭祖)는 몽고 원(元)나라 녹(祿)을 먹었다.
이성계는 이자춘의 차남으로 스물 두 살에 공민왕에게 등용되고, 58세에 왕위에 올라 태종 8년 행년 칠십 사세로 돌아가셨다.
이 양녕대군의 제 15대 후손이 이경선(李敬善). 이 분의 아들이 이승만.
이조 제 19대 숙종 원년(AD 1675)에 남산, 서남쪽 남대문 동남간 도동(桃洞)에 경선공 일족의 종조(宗祖) 양녕대군의 사당 지덕사(至德祠)를 지어준 이후로 그 후손들이 옹기종기 모여 살아 남산골 샛님 별명을 가지게 됨.
그런데 남산골 샛님 이승만이 프란치스카와 결혼한 것. 이 게 떵구멍으로 호박씨 깐 건가? 파란 눈 백인이 좋아 고양이가 부뚜막에 먼저 올라간 건가?
팬티즈 빨래도 해주고 먹을 것 챙겨 주고 사랑스럽게 도와줘오기 때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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