먼곳에서
긴 경적이 은은히 들려왔다.
잠이
어렴풋이 깨면서 곱고도 단조로운 소리가 간간히 들려
오는데 내가
지금 꿈속에서 이 소리를 듣고 있는가 아니면 생시에서인가
확실치가 않았다. 슬며시
눈을 뜨고 방안을 살펴보니
해가 환히 창문을 밝혀주는 아침이었다.
이렇게
밝을 수가 있나 하며 정신을 가다듬는데,
분명히
자동차의 크락숀 소리 같았다.
자동차 소리?... 창가로 달려가서
아래를 내려다 보았다. 관광
호텔 앞 마당에는 검정색의 긴 자동차의 지붕이 내려다
보이자, 나는 비로서
늦잠을 자고 있었다는 사실을 깨닳았다.
거기에
"링컨"
이
곧 떠나겠다는 듯이 경적을 울리고 있자, 잘못하면
나를 이곳에 내려놓고 그들이 갈 수도 있다는 공포감에
휩싸이면서 나는 정신없이 바지와 와이샤스를 걸치고,
넥타이는
걸머쥐고 4 층의
계단을 단숨에 달려 내려와서 승용차 앞자리로 뛰어들게
되었다.
바지의
지퍼는 아직 열려 있었고,
와이샤스는
입었으나 단추는 아직도 잠기지 않은 채였다.
넥타이는
아직도 다행이 손에 걸려 있었다.
양말과
구두가 제대로 신겨있는 것을 확인하고는 일단 안도의
한숨을 내쉬고 차안의 분위기를 살폈다.
이상하게도
뒷자석으로 부터 무슨 호통치는 소리가 들리지 않았다.
내
또한 감히 돌아다 보며 사과의 말을 늘어놓을 형편도
아니지 않는가. 자동차는
어디론가 달려가고 있는데,
회장은
뒤에서 "비서란
놈이 왜 이 모양이야, 늦잠을
자다니...쯧
쯧 쯧...", 그렇게
혀를 차고 있으리라 생각하면서,
나는
혼자 생각에 잠기기 시작했다.
내가
어찌 이런 창피한 지경에 까지 이르게 됐는가를 곰곰히
되새겨 보았다. 차창
밖으로는 아름다운 시골풍경이 전개되고 있었겠지만서도...
이렇게
회장을 모시고 타지에 나와서 늦잠을 자게된 이유가
무었일까? 그러니까
......어제
저녁, 그렇지... 그녀와
춤을 추고 돌아와서 곧 잠을 청했었지...그럴때
회장한테서 전화가 왔었다.
"너
지금 이쪽으로 건너와라"
하시며,
"구관에
오면 누가 너를 안내할테니 그를 따라 내 방으로 와".
그래서
그리로 급하게 달려갔었다.
정말
누가 기다렸다가 나를 안내했다.
한식의
여러 개 방을 꼬불꼬불 지나서 긴 복도 중간 쯤의
어느 방문을 노크하였다.
안에서
굵은 회장의 목소리가 나를 들어오라 했다.
앉으라는
방석위에 앉으면서 방안을 살폈다.
회장과
그 젊은 여성이 큰 자개상을 앞에 놓고 앉았는데,
상위에는
여러가지 산해 진미가 가득했다.
회장께서는
몇 잔 하셨는지 취기가 얼굴에 역역하나 그 여자는
새초롬이 정색을
하고 있었는데 조금전 까지 나하고 춤을 추었던 그
여자의 기색이 아니었다.
나는
무슨 영문인지 몰라 엉거주춤하고
있는데, 회장께서
"싱싱하다는
생선회가 시원치가 않다"고
하시면서 횟점 몇개를 내 접시에 올려놔 주셨다.
하여간에
나도 몇잔의 술을 마셨던 걸고 기억한다.
회장
앞에서 긴장해서 인지 아니면 내가 끼어들 자리가
아닌데를 왔는지 취기가 전혀 돌지 않했다.
묵묵히
음식만 뒤적이는 나를 보더니,
슬그머니
회장께서 이런 얘기를 꺼내셨다.
"거,
있잔아...그
조선일보의 방회장 말이야."
걸직하고
묵직한 굻은 목소리로 내게 이렇게 말씀을 시작하셨다.
"그
양반 대단하더군.....나보고
애기 기생의 머리를 올리라는 거야."
너
알잔아, 기생이
되려면 어떤 놈이 하루밤을 자주어야 하는거"
아뭇대꾸
못하고 가만히 듣고만 있었다.
" 14 살
짜리를 데려다 놓고는 나보고 머리를 올리라는 거야."
나는
그녀의 표정을 급히 살폈다.
회장께서
이런 말씀을 하시는데 그녀가 어떻게 반응하는지 나도
모르게 신경이 쓰여서였다.
그런데도
그녀의 표정에서 나는 아무것도 읽을 수가 없었다.
그런다고,
내가
회장님께 맞장구 치면서 "그래서
올리셨읍니까?" 할
수도 없었으니, 결국
회장님의 재미(?)있는
화제는 혼자의 푸념으로 끝나고 말았다.
나는
분위기를 살리기 위하여 무슨 말을 했는지 지금 기억에
남는 것이 없다. 그저
조용히 어색하게
앉아 있었지 않았나 생각된다.
우리
회장님은 이후락씨와 교분을 갖고 그의 주위에 모이는
많은 재계 인사들과 가깝게 지내고 있었던 것을 나는
안다. 조선일보의
방 회장으로 말할 것 같으면,
박
대통령이 군사 혁명으로 권력을 잡으면서 제일 먼저
손쓴 것이 언론 통제였는데,
혁명
초에 정보 장교로 있던 이후락씨는 이 중책을 맡고
장안에 한량으로 이름을 날리던 방 회장과 어울리게
되었다. 두사람이
의기가 맞아 자주 만나는 술자리에서 우리 최회장도
방회장과 어울렸을 것은 당연지사였다.
왜냐하면
최회장은 이후락씨를 형님으로 호칭하며 여러가지로
그의 뒷시중을 하고 있을 때였기 때문이다.
여하튼,
나를
불러들여 봐도 별 재미가 없었던지,
"그럼
돌아가서 자라" 라고
일러서 돌아와 잔 것 밖에는 별로 늦잠을 잘만한 소지가
없었다. 그것도
해가 중천에 뜰때까지...아니,
운전기사가
나와 한방에서 잤다는 생각이 들었다.
회장과
같이 움직여 왔던 그는 회장이 언제 기상한다는 것을
잘 알것이다. 한데,
자기만
빠져나가고 나를 그대로 자게 내버려둘 수가 있느가?...
괘씸한
생각이 들었지만 지금 어찌 할건고?
이런
생각에 잠겨 있는 동안에 어느듯 목적지에를 도착하는
모양이었다. 공장
건물이 보이자, 열댓
명의 사무직원들이 길 양옆으로 일렬로 늘어서서 우리를
맞이하고 있었다. 거기는
박 대통령의 고향 땅인 서산 어디였다.
나도
이번 길에 우리 회사가 이런 곳에 또 다른 방계 회사를
가지고 있었다는 것을 처음 알게되었다.
한국경제가
급성장하다 보니 많은 기업체들이 주인을 자주 바꾸는
그런 시절이었다. 이번
여행 끝에 대구 까지 가서 도산되는 작은 중소기업체들을
둘러봤었다.
나는
오늘 아침 비서로서 해야할 본분을 망각한 큰 실수를
했다고 생각하던 중이었다.
사실
회장은 나의 잘못에 대하여 아직 아무 꾸짓는 말씀이
없었지만, 나는
그렇게 생각했다. 이번에는
여러 사람들 앞에서 회장의 위신을
올려주는 정말 비서다운 행동을 해야겠다고 이미 마음을
단단히 먹고 있었다.
이들
군중 속으로 "링컨"이
스르르 미끌어져 들어가다 드디어 멈추어 섰다.
나는
차가 멈추어 서자 마자 불이나케 앞잘리를 박차고
뛰어나가 회장의 뒷문을 급히 열었다.
아뿔싸!
아니
이게 왼 일이냐? 차가
시골의 황토 자갈길의 먼지를 몰고 오고 있었다는
것을 미쳐 예상하지 못했던 것이다.
먼지가
뭉쳐서 열어논 문을 얼시구나 그 안으로 몰려들어 가는
것이 아닌가! 나는
너무나 놀랬다. 회장님을
먼지로 뒤집어 씌우다니...먼지를
꺼집어 내야겠다는 절박한 심경에 몰려들었지만,
이미
어찌할 도리가 없었다. 기가
막혔다.
드디어
회장님께서 소리를 지르셨다.
"야...임마아!"
禪涅槃